gensdei 하나님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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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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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9장-11장 주해와 적용 ("그 말씀" 2000년 7월호, 조병수)
로마서 9장-11장 주해와 적용 ("그 말씀" 2000년 7월호, 조병수)

  사도 바울은 앞에서 성도의 구원에 관하여 진술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도 바울은 새로운 테마에 들어선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역사에 과한 것이다. 이것은 롬 9-11장에서 전개된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임을 말한다 (9장). 이어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한 백성임을 말한다 (10장).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백성임을 말한다 (11장).

I. 이스라엘의 선택 (롬 9:1-29)
  
1. 이스라엘을 위한 특권 (롬 9:1-5)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자신의 입장을 두 가지로 말한다 (9:1-3).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뜨거운 심정과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심정을 토로한다 (9:1-2).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근심이며 고통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소원을 표현한다 (3).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것을 각오한 소원이다. 왜 사도 바울은 이런 심정과 소원을 가지는가. 이스라엘은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과 조상들과 그리스도라는 다양한 특권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을 위한 말씀 (롬 9:6-13)
  그러면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처럼 특권있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사도 바울은 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6)을 들어 이것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말한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선택을 증명한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이스라엘을 정의한다.

1) 아브라함의 씨 (7-9)
  첫째로 진정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씨이다. 우선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의 정체를 말한다 (7). 아브라함에게 난 자는 이스마엘을 비롯하여 많이 있다 (참조. 창 25:1-4). 그러나 오직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씨이며,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만이 아브라함의 씨이다 (창 21:12). 또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의 성격을 말한다 (8-9). 오직 이삭과 이삭으로부터 난 자가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삭과 이삭의 자손만이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2) 이삭의 씨 (10-13)
  사도 바울은 참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이삭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말하면서, 이삭의 자손 중에서도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점검한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오직 이삭과의 관계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두 아들은 모두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두 아들이 모두 약속의 자녀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하여 리브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진술한다. 이 말씀의 시간과 목적과 내용과 입증이 하나씩 설명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의 시간은 "자식들이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 (11상)였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삭의 아들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행동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의 목적은 하나님의 선택의 뜻이 굳게 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1하).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선택에서 사람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12; 창 25:23)는 것이다. 큰 자인 에서가 어린 자인 야곱을 섬길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의 뜻에 의한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의 말 (말 1:2-3)을 통하여 입증된다 (13).

3. 이스라엘을 위한 선택 (롬 9:14-29)
  이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자주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1) 하나님의 선택의 자주성 (롬 9:14-18)
  첫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이삭만을, 이삭의 자손 중에서도 야곱만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주성에 달린 문제임을 보이기 위하여 대조적인 두 인물 모세와 바로를 예로 든다. 사도 바울은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하여 동일한 어투를 사용한다. "말하다" (15,17), "그런즉" (16,18).
  먼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언급한다 (15-16). 사도 바울은 우선 출 33:19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심과 불쌍히 여기심은 하나님에게 달린 일임을 밝힌다 (15). 또한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소원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성취된 것임을 알려준다 (16).
  이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하신 말씀을 언급한다 (17-18). 우선 사도 바울은 출 9:16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을 전파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긍휼히 여기심과 강퍅케 만드심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임을 알려준다.
  인간이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과 동일한 차원에서 협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능동적이 되고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 된다. 왜냐하면 구원은 그 근원으로부터 볼 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만큼이나 완벽하다.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어떤 인간의 세력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으며, 어떤 자연의 변화도 그것을 변질시킬 수가 없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롬 8:31,35,39). 하나님의 구원은 흔들릴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함과 감격함이 있다.

2) 하나님의 선택의 정당성 (롬 9:19-29)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이 정당한 것임을 말하기 위하여 예화적 설명과 성경적 입증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이야기를 도입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이 자주적인 것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19-20). 하나님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은 만드는 사람과 만들어진 물건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만들어진 물건이 만드는 사람에게 항의할 수 없듯이,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항의할 수 없다.
  우선 사도 바울은 예화적으로 설명한다 (21-24).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인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이다 (사 64:8; 렘 18:6). 먼저 비유가 나온다 (21). 동일한 질과 양의 진흙 덩어리가 두 개 있다고 하자. 토기장이에게는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는 비싸고 귀한 그릇을 만들고,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는 값싸고 천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다. 이때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토기장이의 모든 행위는 그의 권한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토기장이의 행위는 정당하다. 이어서 적용이 나온다 (22-24).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인생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진노의 그릇과 같은 인생이고 하나는 긍휼의 그릇과 같은 인생이다. 진노의 그릇과 같은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와 능력을 알리고자 멸망을 위하여 준비된 인생이다. 긍휼의 그릇과 같은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고자 영광을 위하여 예비된 인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두 인생에 대하여 다같이 은혜를 베푸신다고 해서 누가 항의할 것인가? 이 그릇은 누구인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이다 (24).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가운데서 뿐 아니라 이방인가운데서도 부르신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권한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무차별과 차별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종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하여 무차별하시다. 그들을 모두 대상으로 삼는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이방인에 대한 무차별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위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차별하신다. 그들 가운데 각각 얼마를 부르신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성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경적으로 입증한다 (25-2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무차별성과 차별성을 성경을 통하여 입증한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 대한 무차별성을 말하기 위하여 호 2:23을 인용한다 (25-26). 하나님은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성을 말하기 위하여 사 10:22-23 (참조. 호 1:10)을 인용한다 (27-29). 이것은 유명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 사상이다. 유대인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신앙을 위하여 남은 자 만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사 1:9를 인용하여 다시 한번 남은 자 사상을 밝힌다 (29).

II. 이스라엘의 거부 (롬 9:30-10:21)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선택에 이어 이스라엘의 거부를 설명한다. 선택된 이스라엘은 거부한 이스라엘이 된다. 이스라엘은 믿음과 복음을 거부하였다.

1. 이스라엘의 믿음 거부 (롬 9:30-10:15)
  사도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이 믿음을 거절하였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믿음을 거절한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믿음에 의지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다.

1) 믿음에 의지하지 않음 (롬 9:30-33)
  이스라엘의 믿음거부는 첫째로 믿음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거부를 설명하기 전에 이방인의 칭의를 먼저 말한다. 이방인의 칭의 (30). 이방인들은 본래 의를 좇지 않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가짐으로써 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에서 난 의"라고 불린다. 이스라엘의 불의 (31-33). 이스라엘은 본래 "의의 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율법은 의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롬 7:12). 그러나 율법이 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의로운 성격이 표현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이르지 못하였다" (31).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32).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율법과의 관계는 믿음에 기초하지 않고 행위에 기초하였다. 의로운 율법을 믿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행위로 이해한 것이 잘못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부딪힐 돌에 부딪혔다 (33). 이스라엘은 결국 부딪힘 돌과 걸림돌을 만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사 28:16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믿음을 가진 자는 이 부딪힘 돌과 걸림돌을 피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음 (롬 10:1-4)
  이스라엘의 믿음 거부는 둘째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소원과 간구를 말하고 (1),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2-3). 그러나 문제는 이 열심이 무지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 무지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열심하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를 설명한다 (4).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점이다. 그 목적은 의를 이루는 것이다. 그 대상은 모든 믿는 자이다.

3)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 (롬 10:5-13)
  이제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비교한다. 율법의 의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모세의 글에 잘 나타난다 (5; 레 18:5). 그러나 믿음의 의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6-13).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믿음의 의가 말하는 두 가지 말을 설명한다. 믿음에서 나오는 의가 말하는 첫 번째 말은 행위를 거절하는 것이다 (6-7). 하늘에 올라가겠다는 말이나 (6; 신 30:12), 음부에 내려가겠다는 말 (7; 시 107:26)은 모두 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아래로 흔드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거나 모셔 올리는 행위가 된다. 믿음에서 나오는 의가 말하는 두 번째 말은 믿음을 승인하는 것이다 (8-13).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신 30:14을 인용하고 그것을 해설한다.
  우선 사도 바울은 신 30:14을 인용하여 "가까운 말씀" (8)을 말한다. 믿음에서 나오는 의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입과 마음이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해설하여 입과 마음의 반응을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9-13). 입의 고백과 마음의 믿음은 병행되어야 한다 (9-10). 주 예수에 대한 입의 고백과 부활에 대한 마음의 신앙은 별개의 것일 수가 없다. 이 둘은 다같이 구원의 조건이다.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두 가지 성경으로 입증한다 (11-13). 첫째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11; 사 28:16). 이 말은 인간이 믿음을 갖지 않은 상태는 부끄러움이란 것을 전제한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타락과 비참의 상태에 있다. 외견상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여 인간의 타락과 불행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포장일 뿐이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 상관없이 인간의 타락과 비참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지 않으면 타락과 비참 속에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때 드디어 타락과 비참에서 벗어나게 된다. 둘째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3; 욜 2:32 = LXX 3:5). 여기에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첫째로 구원은 인종에 차별이 없다는 사실이다 (12상).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종족에 차별이 없고, 자유자이건 종이건 신분에 차별이 없고, 남자나 여자나 성별에 차별이 없고, 어린이나 늙은이나 나이에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부요하시다는 사실이다 (12하). 하나님께서 부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요가 너무나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이렇게 감탄했다: "깊도다 하나님의 부요함이여" (롬 11:33).

4) 구원의 사슬 (롬 10:14-15)
  이제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이것은 구원의 사슬 (armilla salvationis)이다 (14-15).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구원 앞에는 부름이 있다 (13). 부름 앞에는 믿음이 있다 (14상). 믿음 앞에는 들음이 있다 (14중). 들음 앞에는 전파가 있다 (14하). 전파 앞에는 보내심이 있다 (15). 이것은 구원의 계단이다. 이 구원의 계단에서 가장 첫 단계는 하나님의 보내심이다. 하나님의 보내심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한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파송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왜 그런가? 보냄받는 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믿은 성도를 높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일을 할만한 자로 귀하게 생각하신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15; 사 52:7). 성도들은 복음전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존귀한 아름다움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무시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야말로 타락과 비참함 가운데 빠져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존재로 생각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파송을 받았다는데서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드러난다. 전도하는 일에서 성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존귀함을 얻은 자라는 것을 가장 크게 드러낸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된다 (고전 3:9). 만일에 어떤 성도가 자신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께서 높혀주시고 존귀하게 해주신 것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짓을 하는 것이다.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치없는 목석과 같은 존재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복음 거부 (롬 10:16-21)
  사도 바울은 이제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였다고 설명한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였다고 선언한다 (16상).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복음불순종을 성경을 들어 입증하고 그것을 해설한다 (16하-17). 먼저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 (사 53:1)을 제시한다 (16하). 이사야 선지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을 해설한다 (17). 들음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이는 들음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순서는 이렇다. 말씀 - 들음 - 믿음. 믿음의 기초는 언제나 말씀이다. 들음은 단지 중개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유래는 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논박한다 (18-21). 이스라엘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기회와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 기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어졌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시 19:4를 인용하여 이스라엘에게 들음의 기회가 만물을 통하여 주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18). 그러나 이스라엘은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성구로 이스라엘에게 앎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입증한다 (19-21). 한번은 모세가 말한 바와 같이 (신 32:21), 이방인들에 의한 시기와 분노를 통하여 주어졌다 (19). 한번은 이사야가 말한 바와 같이 (사 65:1-2), 하나님의 적극적인 찾아짐과 기다림을 통하여 주어졌다 (20-2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III. 이스라엘의 회복 (롬 11:1-36)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거부에 이어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서 말한다. 본문은 먼저 두 번에 걸친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1,11)라는 표현으로 두 단락으로 나누어지고, 이어서 "형제들아" (25)라는 호칭으로 새 단락이 시작되며,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구속역사를 총정리하는 송영이 나온다 (33-36).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주제를 제시한다 (11:1-2상). 우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 질문을 던진다 (1상). 사도 바울은 시 94:14을 인용하여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2상).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고집스럽게 연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민족의식 때문이다 (1하).

1. 이스라엘의 회복과 남은 자 (롬 11:2중-10)
  첫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는 것을 다루면서 "남은 자" 사상을 확인한다. 이스라엘가운데 남은 자 만이 회복된다. 이것을 위하여 먼저 성경적인 증거를 말하고 (2하-4), 이어서 실제적인 해석 (적용)을 말한다 (5-10)

1) 성경의 증거 (롬 11:2중-4)
  사도 바울은 성경적인 증거를 위하여 엘리야 사건을 채택한다 (2중). 첫째로 사도 바울은 왕상 19:10,14을 인용하여 엘리야의 송사를 말한다 (2하-3). 송사의 내용은 이스라엘에 의한 선지자살해와 제단파괴이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오는 통로이며, 제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가는 통로이다. 선지자를 죽이고 제단을 헐어버린 것은 하나님이 나아오는 길을 막은 것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적인 죄악의 모습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왕상 19:18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대답을 말한다 (4). 하나님의 대답은 남은 자를 두셨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선 남은 자는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를 위하여 남은 자를 세웠다. 남은 자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또한 남은 자는 우상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셋째로 남은 자는 완전수이다.

2) 현재적인 적용 (롬 11:5-10)
  사도 바울은 엘리야 사건을 현재적으로 적용한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두 종류의 남은 자를 말한다. 첫째 남은 자는 선택된 자들인데 사도 바울은 이들을 레임마 (      )라고 부른다 (5; 9:27 참조). 둘째 남은 자는 유기된 자들인데 사도 바울은 이들을 로이포이 (     )라고 부른다. 선택된 남은 자에 관하여는 (5-6하),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선택된 남은 자가 있다. 현재적인 남은 자 (레임마)는 "은혜의 선택을 따라"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성취하신 것이다. 남은 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행위는 전적으로 배제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작용한다. 만일에 사람의 행위가 포함된다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6하). 유기된 남은 자에 관하여는 (7-10),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버려진 자가 있다. 이들은 선택된 남은 자를 제외한 모든 남은 자이다. 그런데 이들은 "완악하여졌다". 사도 바울은 이번에는 유기된 남은 자들의 완악함을 지적한다. 유기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행위가 전적으로 고려된다. 사람의 악한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극한다. 선택과 구원을 위하여는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행위가 중요하며, 유기와 심판을 위하여는 인간의 행위를 고려하는 하나님의 행위가 중요하다. 완악한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가? 사도 바울은 두 개의 구약성경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반응을 설명한다. 첫째로 신 29:4와 사 29:10을 인용한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특히 "오늘날까지"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 옛날과 지금을 함께 포함하는 이중적인 어법이다. 사도 바울은 이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은 옛날에도 지금도 계속 살아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유기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음도 눈도 귀도 모두 막아버리셨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다. 둘째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한다. 유기자들은 눈이 닫힌 자가 된다. 요약하면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가운데 오직 선택된 남은 자 만이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2.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방인 (롬 11:11-24)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는 것을 다루면서 "이방인"의 문제를 다룬다. 1절에 이어 두 번째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11)로 도입한다. 사도 바울은 이 단락에서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방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먼저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었다는 것과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에게 시기를 일으켰다는 것을 말한다 (11-16). 이어서 이스라엘의 꺾여짐이 이방인에게 붙여짐을 주었다는 것과 이방인의 붙여짐은 이스라엘의 붙여짐을 예견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17-24).

1) 이스라엘의 넘어짐 (11-16)
  먼저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관하여 설명한다 (11상).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완전한 넘어짐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에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결국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시기하게 된다. 이 단락의 주제어는 "시기"이다 (11,14). 이스라엘은 이방인에 대하여 두 가지 면에서 시기를 한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이방인이 얻은 구원에 대하여 시기한다 (11-12).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가 된다. 그런데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시기를 일으킨다 (11). 결국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더욱 중요한 사실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과 이방인에게 부요함을 준 것보다도 이스라엘의 회복은 세상과 이방인들에게 더 큰 부요함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12). 둘째로 이스라엘은 이방인이 받은 전도에 대하여 시기한다 (13-16). 이것을 말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을 설명한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3).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목적은 무엇인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시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4). 결국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위에서와 같이 더욱 중요한 사실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버림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부활의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15). 사도 바울이 내리는 결론은 이러하다. "처음 익은 곡식이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6).

2) 이스라엘의 꺾여짐 (17-24)
  이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꺾여짐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유명한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의 비유를 말한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꺾여지고 이방인이 접붙여진 것을 말한다 (17-22). 이스라엘이 꺾여진 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며, 이방인이 붙여진 것은 그들의 신앙 때문이다 (20). 사도 바울은 접붙임을 얻은 이방인들을 향해 두 가지 경고를 준다. 첫째로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18상).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은 이방인이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이방인을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하). 둘째로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20). 교만할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심 때문이다 (21).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22). 둘째로 사도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접붙여질 것을 말한다 (23-24). 이스라엘의 회복은 두 가지를 근거로 할 때 가능하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신앙이다. 이스라엘이 신앙을 가지면 회복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능력이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방인의 구원에 비추어볼 때 더욱 확실한 일이다.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이 구원을 받았다면,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24).

3. 이스라엘의 회복과 만인 (롬 11:25-32)
  셋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는 것을 다루면서 "모든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비밀"이라고 표현한다 (25상). 그러면 이 비밀은 무엇인가?
  우선 이 비밀은 이스라엘의 완악과 구원에 관한 것이다 (25하-29).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구원이 충만에 이를 때까지 완악하다 (25하). 그러나 결국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 (26-29).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남은 자의 총수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로 성경의 증거 때문이다 (26하-27).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사 59:20-21 (참조. 사 27:9)로 증명한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신분 때문이다 (28).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는 원수상태이지만, 이스라엘의 전통은 변함없이 남아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다 (29).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은 하나님의 불변성이라는 성품에 근거한다.
  또한 이 비밀은 이방인의 불순종과 구원에 관한 것이다 (30-32). 이방인은 본래 불순종하던 자들인데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긍휼을 입었다 (30).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유사 (analogy)를 배운다. "이와 같이" (31). 이스라엘도 불순종하던 자들인데 이방인의 긍휼 때문에 긍휼을 입을 것이다 (31).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0-31). 이방인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불순종과 긍휼의 함수관계는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한 유사를 제공한다 (32).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의 절정이다.

4. 송영 (롬 11:33-36)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부요성을 찬양한다 (33). 또한 그는 하나님의 비밀성을 찬양한다 (34).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시종성을 찬양한다 (36).

요약

  사도 바울은 성도의 구원에 대하여 진술한 다음에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설명한다. 가장 먼저 이스라엘의 선택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을 열거한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런 특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진술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기에 정당하다. 하나님은 차별적으로 유대인 중에서 얼마를 택하시고, 무차별적으로 이방인 중에서 얼마를 택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자주성과 정당성에 의하여 구원의 대열에 들어섰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거부하였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믿음을 거부하였다. 믿음에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믿음이란 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둘째로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부하였다. 만물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성품을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걸림돌에 부딪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전도를 위한 큰 교훈을 얻는다.
  사도 바울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믿음과 복음을 거부하였지만 결국은 회복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회복은 남은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신다. 시기나게 하기 위함이다. 결국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은 불순종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위한 예표가 된다. 넘어진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생각할 때, 꺾여진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생각할 때, 멸망당할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표현되는 위대하고 부요한 은혜에 의존해야 한다.



   로마서 7장에 대한 신학적 해설 (그말씀, 2000년 6월호)

조병수
2005/03/27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 배경과 목적 (2000.7.3. 조병수,그말씀)

조병수
200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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